일상을 감각적 차원에서 해석하자면 연속적이다. 항상 먹던 음식을 먹고 같은 곳에서 자며 매일 보던 사람들을 만난다. 돌발 적인 사고나 사건을 제외하고는 예측된 생활의 패턴들이 반복된다. 째깍째깍 울리는 시계 소리는 음량 자체만으로 보자면 층 간 소음과 별 차이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것의 규칙에 감각이 적응하면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도 부드럽게 흘러 간다.
일탈은 그러한 일상의 연속성에 불연속적인 충격을 준다. 달리는 차 안의 소음에 적응한 승객이 오히려 조용해질 때 잠이 깨 듯, 연속성의 단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하는 기능을 한다. 항상 주변에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던 내 지인들과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내 일상식의 소중함을 여행이나 일상과의 단절을 통해 느끼게 되는 것, 이러한 일탈이 가져오는 효과는 잠에 서 깨듯 무뎌진 인지능력을 깨우는데 효과적일 수도 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화의 본질, 즉 몽타주의 분절성(discontinuity)이 갖는 소격효과(estrangement effect)가 대중을 계몽시킬 것이라 낙관했다. 안타깝게도 할리우드의 상업성은 그 분절성마저 너무나도 흠없는 연속성 (continuity)으로 승화시켰지만, 벤야민이 여기서 말한 몽타주의 효과는 장면 간의 충돌이 발생시키는 이질감이다. 이질적이 고 낯설음은 관객을 내러티브에서 끌어내어 비판적 태도를 취하게 한다. 벤야민이 말하고자 한 것은 모든 사태를 자율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인간을 화가 만들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얄루는 한국 출신 작가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해외에서 보낸 시간 때문인지 한국 문화에 대한 익숙하지만 낯설음을 표현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K-pop, 집단체조, 강렬한 색채, 인삼, 드라마에서 보이는 사랑과 같은 것은 너무나도 우리에게 친숙하지만 얄루의 손을 거치며 이질적으로 재탄생된다. 이러한 것들은 어떠한 일관성 있는 카테고리에 묶이지 않지만 그녀의 주관적 시선에 비치는 자국 문화에 대한 자기비판적 태도가 아닐까.
넓게 보자면 얄루는 한국 문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것들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편안하게 대중들을 몰입시킨다. 마치 영화의 주인공과 혼연일체가 된듯, 광고에서 보이는 물건이 나에게 필요한 듯, 그 너머의 깔린 상업성은 망각된 채 한번 몰입되면 미디어에서 비치는 그대로를 수용하게 된다.
얄루는 어떠한 입장을 취하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고 해석의 몫을 관객에게 넘긴다. 어쩌면 그것이 얄루의 작품이 이질적이지만 유쾌하고 즐거운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관객을 그들이 소속된 문화권으로부터 분리시켜 놓음으로써 그들의 일상을 비판할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3D 가상현실을 통해 현실의 가상성을 보여주는 자기비판적 속성은 매우 흥미롭다. 하트는 왜 저렇게 생겼을까, K-pop에 대중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집단 체조는 무슨 탁월한 효과가 있을까. 3D 고글을 쓰고 즐겁지만 낯선 경험을 기대해 본다.
글 ㅣ 한요한 디렉터
음향: 오세륜
포스터: 이다인
Sound: Seiryun Oh
Poster design: Dyne Lee